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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가톨릭 대학교 피정 : 09.08.07 - 09.08.0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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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가톨릭 대학교 피정 : 09.08.07 - 09.08.09

생각의탄생 2010. 3. 8. 20:32
수원 가톨릭 대학교 전경. 이튿날인 8일은 날이 참 좋았습니다.
(포토샵 오려붙이기 신공;; 클릭하시면 조금 더 큰 사진이 나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마태 11, 28)

가톨릭에서 피정이란, 일정 기간 일상에서 벗어나 묵상과 기도 등 종교적 수련을 할 수 있는
고요한 곳으로 물러남을 뜻하는데, (위키사전참고) 신자로써 참 부끄럽게도 20대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처음 이 피정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가톨릭 대학교에서 일반 신자에게 공개된 피정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은데, (보통 수도회나
가톨릭 대학교는 그 특성상 외부에 늘 공개되지는 않습니다. 특히 2박3일이란 기간동안 피정을
하는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학생들이 각 성당에 파견된 방학기간이니 가능한
것이기도 하구요) 참 운이 좋게도 한 달 전쯤 빠른 시간 내에 마감되어버린 기회를 잡게된 것이지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게는 첫 피정인데다가 평소에 기도조차 소홀히 하였기에 설레임에 더불어
왠지 모를 긴장감도 1+1 덤으로 따라오더군요. 어쨌든 거의 10여년만에 가보는 수원역역을 거쳐
버스를 타고 가톨릭 대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아쉽게도 사진은 없지만 학교까지 올라가는 언덕길
양 옆으로 무성한 가로수들이 참 인상깊었습니다. 여름의 푸르름도 아름답지만 단풍으로 물들
가을이 되면 훨씬 더 멋지겠지요. 다음 기회에 한 번- ^^


수원 가톨릭 대학교 대성당


언덕을 올라 대성당에서 몇 분 더 오시기를 기다렸다가 차를 타고 애덕관으로 올라갔습니다.
저를 포함 젊은 분들이 의외로 적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들이 언덕 위, 에어컨이 없는
애덕관으로 숙소를 배정받은 것이었습니다. 유난히 더위를 잘 타는지라 걱정했지만 산 속에
있어 아침 저녁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좋았습니다. 다만, 저야 3일 지내고 돌아가지만
그 곳에서 생활하신다는 대학원 이상 부제님들은 좀 힘드실 것 같다는 생각이..

숙소에서 내려올 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강의를 해 주셨던, 그리고 저의 영성지도 신부님
이셨던 김병로 신부님의 차를 얻어타고 내려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재미있습니다.
첫 오리엔테이션 시간이 조금 넘은 시간까지도 아무 기척도 없고 방송도 없기에 애덕관 앞을
서성이다가 신부님께 '픽업' 되어 성당으로 내려온 것인데, 고교 3년 + 군대 2년의 이른바
'강제 합숙'을 오래 한 결과인지 저도 모르게 '모두 이동!' 이라는 신호를 기다렸나봅니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신부님의 강의 주제는 '말씀 안에서의 기도' 였습니다.
마음에 다가오는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내적 침묵 속에서 기도하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 의지를 가지고 마음의 집중을 통하여 준비한 내용에 머무를 것
- 기도 시간에는 말씀에 머물고자 하는 나 자신만 있도록
- 기도 시간은 머무는 시간이지 반성하는 시간이 아니다.
- 머물고자함은 말씀의 바다에 풍덩 빠져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내용들입니다. 고백하건데 그 때나 지금이나 이 내용은 잘 이해하지도, 실천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내적 침묵의 호수에서, 하느님께서 마음껏 이루시도록 하고 나는 그 안에서
머물러야 한다는데  자꾸 이성적으로 생각을 덧씌우려 하니 제대로 시작조차 못한 셈입니다.
영적면담 시간에도 나름대로 느낀 무언가를 가지고 신부님과 대화를 나누었으나, 신부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답답하고 어찌보면 귀여운 상담자 녀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성당. 평소에는 조명을 꺼두지만 십자가상에만 동그란 조명을 비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애덕관에도 소성당이 있었지만, 식사 전후 자주 들렀지요. 에어컨이 정말 시원해서요. -_-)


마지막날 파견미사 반주를 해주셨던 학사님(아마도) 말고는 아마 다른 분들이 거의 학교에 계시지
않았기에 상주중인 신부님들께 나름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데, 첫 날 입구에 서서 주차 안내를
해주시던 분도, 식사시간마다 세팅하고 한 명 한 명 국을 떠주시던 분도 신부님이셨네요.
참! 3일간 식사도 어찌나 잘나오던지요. 뷔페식으로 나온 음식들을 조금씩만 담아도 접시가 넘칠만큼
가짓수도 많고 맛있었습니다. 밥이 맛있어서 좀 더 있고 싶....

이튿날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잠시 산책하던 중 한 신부님께서 손짓을 하시기에 재빨리 뛰어갔는데,
아마 저를 어린 학생을 보셨던 모양입니다. 분명 멀리서 보셨기에 착각하신 것이지요.
빠르게 다가오는 제 얼굴을 보며 '아차' 싶으셨겠지만 저는 이미 기분이 좋아졌으니 무를 수 없게
됐습니다. 신부님 ^^

침묵피정인지라 아침 저녁 미사나 성무일도, 신부님과의 개별 면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자유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물론 대략적인 일정표는 있었지만, 때로는 애덕관 소성당에서, 혹은 대성당,
아침 저녁 시원할 때에는 이곳 저곳 산책하며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청설모 뛰어다니는 것도 보구요.

애덕관 뒷편을 산책하던 중에 참 많은 크로버를 보았는데, 신학교 방문 기념 선물을 직접 '채취해'
가져가고자 그 자리에 앉아 네잎 크로버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하나쯤은 '나 여기있어'
할 법도 한데 꽤 오래 보았음에도 찾지 못하고 결국 포기하고 말았네요. 세 잎의 행복도 찾지 않으면서
네 잎의 행운을 찾으려 욕심부렸으니 아마도 괘씸해서 안보여 주신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433년 성(聖) 패트릭이 아일랜드에 가톨릭을 선교할 때,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를 설명하는데
 이 풀을 예로 들어 주민들을 인도한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다. - 크로버 네이버 사전)


신학교에서는 4학년부터 수단을 착용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방 옷장에 붙어있던 이 글귀는 아마 학사님 혹은 부제님이
수단을 착용할 때 드리는 기도문같은데 이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번째 영적 면담은 시간이 조정되어 취침 전 마지막 시간에 하게 되었습니다. 앞의 자매님 면담이
끝나면 신부님께서 올라와 알려주신다 하였지만, 그것을 기다리기가 조금 애매하여 4층 입구에서
서성이기 시작했지요. 배정된 시간은 대략 20여분. 하지만 5분, 10분 늦어지더니 결국 1시간을 넘겨
취침시간 이후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영적 면담에 정해진 시간이 어디있나' 하며 기다림을 당연한척, 즐기는척 하였지만 사실은 짜증이
솟구치기를 여러번. 하지만 결국 화는 누그러지고 불필요한 나쁜 감정을 소비한 자신을 돌이켜보며
여전히 부족함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들을 말씀드렸더니 신부님 자신도 그러한 경험들이
있었다며 저를 위로하십니다.

다만 여러가지 부족함과 공허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말씀안에 머물기'에 마지막 배팅을 하셨고
지금 돌이켜보건데 과연 그것은 옳은 선택이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네요. 아! 짱아치의 비유도요.
생각하는 것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지만 말씀안에 머무는 것은 베어드는 것, 고유의 맛도
있으면서 된장에도 베어드는 것이라고 말이죠. 굳이 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작은 것에라도
머물기를 시도해 볼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저의 영적 상담 내용은.. 비밀? 특별할 것이 없어서;;)

거기에 필요한 것은 역시 성경공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약속은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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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덕관 올라가는 길. 딱 3일 머물렀을 뿐인데 왠지 그리워집니다.


2박 3일의 피정은 마지막 날 일요일, 파견미사로 조용히 마무리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신부님께서
미사를 봉헌하시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었는데, 미사 기도문을 함께 읽으시던 모습을 처음 본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침묵피정이라 제대로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던 형제, 자매님들과 둥글게
서서 이동하며 한 분 한 분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던 것도 좋았구요. 

짧은 기간. 참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다만 어떤 분들께는 더 깊이있는 침묵과 기도의 시간이 되었다면,
저는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그저 기도 '맛보기' 정도였다고 할까요? 하지만 그 작은 변화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게는 가장 큰 변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영성 지도를 해주셨던 김병로 라파엘 신부님과 도움을 주신 모든 신부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마지막, 반성의 의미로 제가 머물렀던 학사님방 책상에 적혀있던 글귀를 제 자신에게 띄워봅니다.

영혼이 얼마나 게으르고 나태하면 사랑의 손짓과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입니까?
[무지의 구름 2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