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EW

배추 500포기 김장하던 날 + 다음 스카이뷰 본문

머리에서/자유롭게

배추 500포기 김장하던 날 + 다음 스카이뷰

생각의탄생 2008. 11. 29. 23:13
[1/28 수정] 다음 스카이뷰로 본 외할머니댁 풍경

저희집은 친가가 큰집인지라 명절때 외갓집에 가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차례를 모시려면 며칠 전부터


똑딱이마저도 없어 급한대로 즈질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찍은 사진/동영상입니다. 이해해주시길


지난 주말. 급저하된 저질체력의 한계를 경험하였으니. 이름하여 '배추 500포기 김장하기!'
식당 하냐구요? 아닙니다. 100% 순수 가정용! 물론 최홍만 기준 4인 1가족 분량은 아니고, 외갓집 식구들
7남매 각 가정의 1년치 김치를 담그는 연례 행사지요. (대략 20인분은 훌쩍 넘어가네요)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번에는 큰이모, 어머니 외 2인 (아버지, 나), 작은외삼촌, 셋째이모/이모부,
막내이모/이모부 9명이 선수로 출전하였고, 감독으로는 올해에도 WKC (World Kimchi Classic) 수차례
우승에 빛나는 명장중의 명장, 외할머니께서 고생해 주셨습니다.

여든을 훌쩍 넘기신 연세에도 배추, 무, 파, 기타 주요 채소들을 재배해오신 외할머니 덕분에 가장 중요한
재료들은 늘 가장 최고 등급의 것들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노력에 비하면, 하루 잠깐 가서 김치 담그는
시늉을 한 저로써는 정말 차려놓은 밥상에서 맛있게 먹기만 하고 온 것이죠.

게다가 토요일 오후 늦게 도착해보니, 먼저 온 식구들이 사람 몇명쯤 숨어도 모를 초대형 고무대야 몇 개에
배추를 잘라 절여놓으셨더라구요. 첫날 인부(?)들 고생했다며, 못잡은 씨암탉 대신 양념치킨을 시켜주신
세련된 외할머니 덕분에 도착하자마자 포식하고 다음날을 위해 일찍 취침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름 배산임수 지형을 자랑하는 외갓집 전경.


별볼일 없는 동영상

일어나보니 일곱시반. 평상시의 주일 아침과 비교하면 일찍 일어난 것임에도 뭔가 찜찜합니다.
그렇습니다. 외할머니의 부지런함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우리 이모들은 새벽부터 일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밖에 나가보니 절여놓은 배추를 물에 행구고 계셨는데 이것도 거의 끝나가고, 이제 남은 것은 메인 이벤트
김치속 만들기. 그리고 배추와 양념속을 합방시키는 김장 속 넣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없는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 아침을 거하게 먹고 일 시작! (이제 즈질 사진이 좀 많아지네요.)

어마어마한 양의 배추들! 절여놓아서 숨이 죽은게 저정도입니다.
(게다가 아직 안끝난)

자! 재료들을 공개합니다!



재료들을 대략 나열해보면
배추 500포기, 무, 파, 갓, 다진 마늘, 다진 생강, 새우젓, 황세기젓 (조기), 멸치액젓,
생새우 (절구에 빻아서 사용), 풀, 고춧가루, 뉴수가 약간, 기타 등등 입니다.

김치맛을 좌우하는 요소는 너무 많습니다. 싱싱한 재료는 물론이고, 고춧가루도 좋아야 하구요.
또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젓갈. 기본적으로 2-3 종류 이상 들어가는데, 황세기젓은 이번에
처음 들어봤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이것 역시 아마도 직접 만드신 것 같은데, 끓여서 채에 걸러
사용하더군요. 새우젓과는 별도로 생새우도 절구에 빻아서 사용하구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만큼, 지역별로도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김치! 아. 여기는 충청도입니다. 
아무튼, 재료가 준비되었으니 이제 김치속을 만들 준비를 해야겠죠.

재료 투입! 아- 많다..

어머니 음식맛의 비결은 계량스푼 이딴거 없고 듬뿍듬뿍 담아주는 정과 손맛이라죠.
주부경력 평균 2-30년 이상의 어머니들은 별 걱정 없이 눈대중으로 재료를 투하합니다.
근데 놀랍도록 정확합니다. 역시..

화장품 광고중에 유명한 카피가 있죠. 재료는 투입하는 것보다 버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고..(응?)
제가 한 얼마 되지 않는 일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사실 제일 힘든 작업이기도 합니다. (-_-a)
저 많은 양의 재료들이 골고루 잘 섞이도록 버무려줘야 하는데, 어찌나 온 몸을 써야하던지.
사진에는 없지만 양 면에서 최소 너댓명이 계속 버무리면서 한쪽 끝으로 몰아가기를 수차례 반복해야 했습니다.

김치속 만들기는 거의 끝나갑니다.

"뭘봐 임마! 일해 임마!"
어.. -_-

김치속 만들기가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배추 속 넣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한포기씩만 계산해도 500.. 이게 최소 2~4등분 되어있으니 양이 엄청나긴 엄청나죠.
이건 고도의 숙련공(?)들이 필요한 일인지라, 저는 절인 배추를 나르는 아주 중요한 작업을 했습죠 ;;
(게다가 가끔씩 마무리가 덜된 배추 끝의 딱딱한 뿌리부분을 다듬는 세심한 작업까지! 네-네-)
염도 높은 배추를 계속 맨손으로 만지고 있자니 슬슬 손이 쓰려오더라구요. 어쨌든 마무리.

속 넣기 작업. 모델료 없이 선뜻 촬영에 응해주신 이모님들과 어무니께 감사.

영원히 줄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배추들도 서서히 줄어가고
 
빠이널리 빨래 김장 끝!
(맨 아래는 치우기 전 사진이네요)

끝을 모를 것만 같았던 일도 결국 끝이 나더군요.
외할머니댁 김치냉장고까지 총 7가정의 김치냉장고 플라스틱 김치통 수십개를 채우는 것도 모자라
큰 고무통도 여러개를 꽉꽉 채웠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김치냉장고 플라스틱 통은 애들 장난수준)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해 김치속 양이 좀 남을 것으로 전해지자, 즉석에서 무를 여러개 뽑아 다듬고 씻고..
그리하여 별미중의 별미 섞박지도 만들었구요. (무로 만든 '빨간것'이라고는 총각김치, 깍두기 정도밖에
몰랐는데.. 설렁탕집에서 나오는 그.. 깍두기보다 크고 얇은 것이 섞박지라는군요.) 갈때는 가벼웠던
트렁크를 김치로 한가득 채우고, 간식으로 고구마 한박스에 뭐에- 늘 그렇듯 주렁주렁 옵션들을 실어왔습니다.

이 모든 것은 여든을 넘기신 연세에, 그 작은 체구와 굽은 허리를 잠시도 쉬게 내버려두지 않으신
외할머니 덕분이지요. 어디 김장 뿐이겠습니까? 이런 저런 일들로 할머니 계신 시골집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워낼 수 있는 것도 스무명 넘는 대가족의 구심점, 할머니께서 계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 1년의 노고 끝에 나란히 서서 마침표만 함께 찍으려니 한없이 죄송스럽고 또 감사한 마음 가득한
주말이었습니다. 할머니 덕분에 한 해가 또 풍성해집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