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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생각의탄생 2010. 3. 8. 20:13


방영두 베드로

용서라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심이 필요하고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슴에 상처를 받은 사람이 누군가를 용서하는데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면
주님의 기도중에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이 구절을 천천히 반복해서 기도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누군가를 용서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님의 기도만큼 간결하면서도 의미깊게 용서를 가르쳐주는 기도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강우 요한

제 생각에는 너무 표면적인 것 같습니다
상처가진 사람이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서 기도문을 활용하라는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직자라면 신자들의 속마음을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에게 맞는 상황을 예로 들었어야 하는데
지금의 예시와 해결 방법은 너무 추상적인 것 같습니다.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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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이 가혹하다고 느껴지는 몇 가지 이유중 하나는
하나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도덕성의 그릇의 크기가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그릇의 크기가 큰 사람은
그릇의 크기가 작은 사람에게서 넘친 것들을 늘 받아내어야 하는데
이것이 반복되면 결국 용서의 문을 잠그고 열쇠를 내던지고야 만다.

차라리 용서라는 감정마저 모르도록 착한 심성을 타고 났다면 좋았을 것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애매한 크기의 양심 주머니를 괜히 달고서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 나섰다가 포기하는 것이 일상이 된 사람이 있다.

2.

허나, 생각해보면
용서의 희망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그릇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에 있다.

나 또한 내 작은 그릇에서 넘치는 것들을 늘 받아내는 이가 있고
나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용서를 구하지도 않으면서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했단 말인가.

결국 처음의 분노어린 글귀는 다시 쓰여져야 할 것 같다.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몇 가지 이유중 하나는
하나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도덕성의 그릇의 크기가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내게 용서를 청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므로.
내가 용서를 할 수 있는 희망을 주었으므로.

3.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자비를 품지 않으면서 자기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느냐?
집회서 28:4

자유롭게 용서를 청할 수 있고, 또한 용서를 할 수 있는 사람만이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용서하도록 권유할 수 있다.

나는 언제쯤 누군가에게 자신있게 용서를 권유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렵고도 긴 여정일 터. 그래도 떠나야 한다. 용서의 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