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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가늘고길게

진성고등학교 : 아침 [1]

생각의탄생 2008. 3. 15. 15:06

아 정말 너무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난리도 아니었다. 다른 애들도 다 똑같은 생각이겠지만 난 제일 싫은게 아침부터 실장 목소리 듣는거다. 내가 언제까지 이 목소리에 잠을 깨야 하나. 아침의 기분이 하루를 좌우한다는데 말이다. 학교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으아악~ -_+ 오늘은 웬일인지 10분전에 눈이 떠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금씩 커지는 음악소리. 그런데 오늘은 누구 생일인가보다. 기숙사 천장의 스피커에서 권진원의 'Happy birthday to you' 가 흘러나온다. 노래는 참 좋다. 어떤 년/놈인지 몰라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뭐 그렇다고 부럽지는 않다. 정말. +_+

"딩.동.댕.동~ 자. 아침이 밝았습니다. 기상! 기상! 모두 실내화 주머니를 지참하고 운동장, 운동장으로 집합해 주시기 바랍니다. 각 층의 선생님. 학생들이 실내화주머니 지참하고 나오는지 체크해 주시고, 만약 안가지고 나오는 사람은 따로 분류해서 오늘 있는 야간 생교 들어갑니다. 기상! 기상! ......!!"

다들 신발신발 거리면서 일어난다. 큰맘 먹고 몸을 세워 앉긴 했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 천근만근 무겁기만한 눈꺼풀을 겨우 들어올리며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유연성 좋은 애들은 사물함에도 잘 들어가 숨더만. 난 일찍부터 포기하고 나간다. 배추 이자식 또 6시 7분쯤 일어난다. 엉덩이를 때려도 몸을 흔들어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 항상 기다리는 쪽은 갬생과 나. 겨우 깨워놨더니, 어라. 이자슥. 신문 배달한다고 그냥 가버리네. 부러운 넘. 공룡도 명예 선도부장 자격으로 그냥 교실로 가버린다. 역시 부럽다. 특히나 오늘 같이 추운 날은.. 어쩔 수 없이 갬생하고 나는, 그냥 나간다.

오늘도 햇님은 방긋! (사실 겨울에는 해가 늦게 뜨기 때문에 어두컴컴하다.) 애들은 부시시한 머리 그대로, 민망하게 '나좀 떼어주소' 외치는 눈꼽 그대로 붙이고 나왔군. 1학년때는 긴장감 때문인지 방송이 나오기 10분전쯤에 일어나서 세수도 말끔히 했다. 2학년 때는 적어도 거울이라도 한번쯤 보고 나오는 성의는 남아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 참 시간이란게 뭔지. 고3때는 다들 공부하느라 외모에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못한다지만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조금 일찍나와 자리를 잡고 서 있는데 저 쪽에서 어떤 여자애가 걸어나온다. 슬리퍼는 질질 끌고 있고, 눈은 아직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머리를 긁적이며 나오는 모습. '헉! 저 애는 평소 우리가 예쁘다고 했던 그..!'

하긴, 이런 정신적 충격에 휩싸인 것도 1년쯤 전의 이야기다. 지금 내 모습을 뻔히 알면서 남의 흉보는 나는 뭐람. 남녀공학, 특히 하루 24시간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 이 학교의 가장 큰 단점을 말하라면 이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신비감이 사라진다는 것. ^ ^ 아무튼 나가보니 흠. 역시 생각했던 그대로이다. 사실 좀 추워지긴 했다. 특히나 아침 조회를 하는 이른 아침과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기숙사로 건너가는 늦저녁은 더 쌀쌀하다. 그래도 이건 우리 학교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 각 반마다 커다란 애벌레가 서 있다. 무슨말이냐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앞에 누가 서있는지는 상관할 바 아니다. 그냥 줄 선 그 상태에서 앞사람 허리를 붙들고 몸을 기대고 서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선 채로 추위와 함께 모자란 잠을 해결할 수 있는 진성인의 능력과 협동정신. 정말 눈물겹다. ㅠㅜ 어떤 놈은 코트까지 껴입었으면서도 부들부들 떨면서 잔다. 정말 잘도 잔다. 그것도 서서. 정말 대단한 협동심의 소유자들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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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성 고등학교의 아침점호.
전교생이 좁은 운동장에 모여들지만 보라! 저 질서정연함을!
[사진 출처 : 사이좋은 사람들 / 손민웅님 미니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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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 제한시간인 10분에 가까워져 오면 실장이 다시 G랄하기 시작한다. 7분부터 1분단위로 카운트다운을 하더니 친절하게도 마지막은 10초부터 센다.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 우정바위에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안정된 자세로 서서.

'오. 사. 삼. 이. 일. 거기 선생님. 지금 나오는 학생 한명도 빠짐없이 잡으세요!'

하여간 좌우간 어쨌든지간. 아무튼 전교생이 운동장에 집합해서는 매일 일주일 한달 일년삼백육심오일 삼년간 지겹도록 한 앉아번호를 한다. 우리도 모르게 몸에 배어버린 줄서기 능력. 군대에 가서 남들 보다 잘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앉아번호겠지? 비몽사몽간 이지만 흐뭇함과 만족감이 몰려온다. '하나~ 둘~' 오늘도 한놈이 화장실에서 자나? 한명이 빈다. 뻔하지. 음악실 길다란 의자에 누워 몰래 자던가 커다란 사물함에 들어가 있던가. 그러고보니 아까 나오면서 슬그머니 사물함 문을 닫는 손을 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짬밥인가. 반장이 이제는 꽤나 능숙해진 구라로 넘긴다. 야담도 귀찮은 듯 됐다고 한다. 쯧.

'뒤로 돌앗! 정면에 있는 골프장이 떠나가도록 함성 5초간 발사!'

'아아아오오-' 점점 줄어드는 목소리. 3학년은 항상 그대로다. 실장이 뭐라고 한마디 한다고 해서 소심하게 쫄아있을 군번도 아니고 말이다. 근데 말이다. 1학년 학기 초.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던 그 때. 3월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가? 지금 저쪽에 있는 1학년이 그렇다. '함성 발사!' 소리와 함께 우렁차게 터져나오는 함성. '우와와아아아--!' 끝이 없을것만 같은 우렁찬 저 목소리. -_-;; 푸훗 ^^* '나도 저땐 저랬지' 하며 마음속으로 '어얼~' 한번 해주고 만다. 어쨌든 그렇게 형식적인 날림 아침 조회는 끝이 나고, 교실로 들어간다. 이것도 3학년이 되어야만 가능한 이야기다. 훌쩍 돌아보니 2학년은 운동장을 뛰고 있고 우리의 1학년은 야담의 지도 아래 질서정연하게 벌을 받고 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참! 생각해보니 우리 1학년때는 에어로빅을 했었다. 참 기막혀 죽는줄 알았다. 진성 역사상 유일무이했을 그 행위. 어두컴컴하고 정적이 흐르는 그 이른 새벽에 아파트가 떠나가라 댄스곡 OPPA의 '그대야 미안해'를 틀어놓고 별 망칙한 동작을 했던. 마치 어둠속의 댄서처럼 희미한 불빛아래서 시범단은 그렇게나 열심히 동작을 했더랬다. 이것 참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고.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3월 초의 어느날 새벽에 우리는 서로에게 어색한 미소를 보내며 엉성한 동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_+

그 이후 운동장 돌기도 하고 벌도 받았지만 잊을 수 없는 건 마라톤. 일주일간 행동반경이 그리 넓지 않은 우리에게 마라톤은 운동이 아니라 고문이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다 그렇듯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마라톤'때문에 괴로워했다. 하지만 난 그 행위가 얼마 가지 않아 끝났던 이유를 알고있다. 그건 바로, 우리의 스빠. 팬클럽 인수분해의 영원한 우상! 'A'군  덕분이다. 우리가 학교의 그 싸이코틱한 결정에 속으로는 엄청난 비난과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실제로는 가만히 있었던데 반해, 스빠는 늘 그랬듯 행동파였다. 마라톤 코스중 아파트 9단지였던가. 그 앞을 지나갈 무렵 갑작스레 들려오는 그의 처절한 외침!!

'아저씨~ 신고좀 해줘여! 아아아아악-' -_+

확신컨데 그 덕분이다. 가뜩이나 새벽부터 마이크로 통제하는 통에 여러차례의 민원을 넣으며 불만이 많았던 아파트 주민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반상회 끝에 단체로 우리 학교에 신고를 했을 것이다. 그 때 그시절. 스빠의 용감함에 박수를 보낸다. ^ ^ 아무튼, 그렇게 수많은 변화를 거친 아침조회를 마치고 그렇게 우린 교실로 향했다.


진성고등학교 시리즈는 총 20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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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 Prologue
아침편  :  첫번째  두번째
주간일과  :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야간일과  :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단편의 기억들  :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특별편  :  교복  진성7무  교지편집부  패러디  졸업생의 눈으로
끝 : Ending Cr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