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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고등학교 : 단편의 기억들 [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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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고등학교 : 단편의 기억들 [3]

생각의탄생 2008. 3. 15. 16:32
7. 수학여행과 야영, 그리고 축제와 체육대회.
 
1년에 딱 한번씩 있는 연례 행사. 하지만 집에서 지내는 방학마저도 약 일주일밖에 없는 우리에게는 논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제일 먼저 1학년 가을쯤에 떠났던 설악산으로의 수학여행.
 
첫 날은 유적지라던가 바닷가에 들러 사진도 찍고, 둘째날 등반을 했다. 유일하게 사복을 허용했었는데 이날만큼은 좀 자유롭게 놔두면 좋을 것을. 조금이라도 달라붙는 옷을 입은 아이들은 복장 불량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입는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등반을 해야 했다. +_+ 5년이나 지나 특별한 기억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단체사진을 포함해서 사진은 여기저기서 참 많이 찍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 등반을 마치고 H군과 같이 내려왔는데, 앞에 가던 한 여학생을 가리키며 '내가 짝사랑하는 여학우'라고 고백을 하기도. (사실 얼굴만 몰랐을 뿐 누구인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앞으로 슬쩍 지나가면서 얼굴을 보고 H군의 독특한 취향에 또 한번 놀라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안타깝게 그냥 지나쳐버릴 것만 같던 인연도 결정적으로 엇갈리게 되는 계기가 또 한번 있었으니!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더이상 밝히지는 않겠다. 두희야 나이뻐? 푸훗 ^^*
 
내려와보니 다리를 다쳐 등반을 하지 못했던 J군은 어떤 여학우와 함께 사진을 찍고 매우 좋아하며 자랑하기도 했었다. ^_^ 아무튼 그날 저녁에는 캠프파이어 겸 장기자랑 시간이 있었는데, 모범반 이미지를 넘어 상당히 좋지 않게 인식되어 있던 우리 1반은 그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갑작스레 강요에 의해 결성된 밴드팀이 공연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 더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 -_-; 달팽이 밖에는. 남들 다 장기자랑 보면서 즐거워할 때 우리는 춥다고 방에서 이불가지고 나와서 덮고 놀았던 기억도 나는군. 다른 것보다는 첫날 바다를 보았던 것. 처음으로 사복을 입고 등반했던 둘째날.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장기자랑 시간의 우리반. ^ ^ 그리고 마지막으로 암울했던 머루장의 기억까지. 수학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2학년 야영.
 
사실 야영이라고 하면 반 친구들 사이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서, 정신적인 교육을 위해서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통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줄을 서거나 인원점검을 하는 등의 질서 교육은 이미 생활이 되어 있었고 하루 24시간을 늘 함께 보내기 때문에 우정이라던가 결속력 면에서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산정호수'였나? 그곳에도 교관이 있었는데, 우리의 상태(?)를 보고 매우 흡족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용상으로는 수학여행보다도 더 특별할 것이 없는 야영이었지만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도록 해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장기자랑'. 1학년의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은 우리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장기자랑에 무관심한 듯 해보였다. 이에 두희, 후섭이, 인원이, 충현이, 그리고 내가 모여 댄스팀을 결성하였으니 이른바 '셰도우 (Shadow : 그림자)' 였다. 사실 2주 전까지도 아무런 연습이 없어 거의 포기하는 듯 했으나 다행히 목표 달성을 위해 뭉쳤다. ^ ^ '우리반이라고 평생 이런 이미지로 기억될 수는 없어!'라는 각오로. 주말 저녁 수원에 있는 후섭이네 집에서 밤을 세워가며, 그리고 학교에서는 시간나는 대로 화학실에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제대로 춤을 춰본적이 없고 단지 열정 하나로 했던 것이어서 그다지 멋있진 않았다. -_- 아무튼 인원군의 엇박자 문제를 겨우 해결하고 드디어 야영 둘째날의 장기자랑!! 남대문에서 샀던 은색 반짝이 추리닝의 진가가 발휘되던 순간!! 뭐 들리는 바에 의하면 깜빡이는 조명과 반짝이 츄리닝이 어설픈 동작을 일정부분 커버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고. -_- 당대 최고의 댄스그룹이었던 잭키와 H.O.T 의 곡을, 그리고 엄정화의 곡은 초등학교 동창이던 전학생 박은구슬과 함께 했다. 생각만 해도 웃기는군. ^__^ 비디오를 수없이 돌려보며 동작 하나하나를 배워야 했던 특이한 경험. (앞으로 이럴 날이 또 있을지 -_+) 그리고 조용하게 동작을 따라하던 아이들이 무대에서는 엄청나게 날라다니는 것을 보고 순간 당황했던 기억. 즐겁게 준비했던 경험은 좋으나 춤에 대한 기억은 잊고 싶다는.
 
아무튼 둘째날은 체력단련을 거쳐 밤에는 촛불의식을 했었다. 또 기억나는 것? 인수의 '도- 레- 미-..' 그리고 촛불의식 전 짝반과 같이 했던 레크레이션에서 절봉이가 보여줬던 춤 등. 아무튼 인생에서 가장 특이한 경험을 했던,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야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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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사진이 없어 홍보 팜플렛으로 대체!
99년과 2000년. 5회와 6회 축제. 완전 학술제. -_-
(교편 활동하면서 축제며 체육대회같은 행사들
필름 몇통씩 찍고 그랬었는데. 쫌 챙겨둘껄. 아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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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1학년때가 기억에 남는다.
 
가장 재미있었던 시기였기도 했고.부담없이 즐겼다는 이유도 있다. 무엇보다도 추웠지만 어두워진 저녁, 따로 설치된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공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는 것도 있고. 축제는 직접적인 현금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생회에서 따로 마련한 화폐(!)를 가지고 교환하는 형태였는데 (500원, 1000원으로 나뉘어졌고, 여러 색의 도화지에 각기 다른 그림으로 구별했던..) 뭐 결국에는 다시 화폐로 바뀌어 같이 준비했던 동아리의 선후배들과 뒷풀이를 한다던가 필요한 물품을 사는 것으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 ^
 
각 동아리별로 축제를 준비하곤 했는데 운동장에서는 대부분 식당에서 탁자와 의자를 빼 와서 음식장사를 했고 교실에서는 전시회라던가 밴드부 공연, 그리고 그 당시 한창 유행했던 DDR이나 사진찍기 등으로 이루어졌다. 낮에는 퀴즈 결승이나 전교생이 참여하는 O X 퀴즈, 점심시간 직전에는 항상 사물놀이 공연이 있었고 이후 어두워지기 전까지 각반 밴드부가 공연을 하였는데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상위권의 밴드부가 밤에 있는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스티커를 붙여 인기도를 판가름하였기 때문에 조작이 쉬웠다는 후문도 ^ ^;; 무엇보다도 축제의 꽃은 어두워진 저녁 야외 무대 (중앙현관 아래)에 조명을 받으며 벌어지는 공연! (자타가 공인하는 선생님 밴드부 보컬이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지만)도 있었고 대부분 노래라던가 춤, 혹은 개그팀의 공연도 있었다. 다들 언제 준비를 했는지 생각했던 수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줘 놀라기도 했다고. 아! 2학년때이던가. 당시 유행하던 TV 프로그램. '가슴을 열어라'던가? 비슷한 포멧으로 이루어지는 코너가 있었음. 예선을 거친 학생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라던가 선생님께 바라는 점, 웃기는 이야기등을 발표하는 것이었는데 이것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2학년때는 교지편집부로 두희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했고. 지금은 새로 만들어진 실내 지하강당에서 저녁행사를 진행하지만 그 때는 무조건 교사동 아니면 야외 행사였다.1학년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2학년 때부터 11월이 아닌 5월경 체육대회와 묶여 진행되면서 길어진 낮 때문에 제대로 된 공연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다. 음식 판매가 줄어들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학술 발표'의 형식으로 바뀌었다는 점도 있고. 아무튼 축제는 일년중에 딱 한번뿐인 행사! 또한 유일하게 남녀 교실을 넘어다니며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행복했다. ^__^
솔직히 체육대회는 말 그대로 체육대회. 별다른 사항이나 기억에 남을만한 사건은 없다. 1학년때는 다른 공설 운동장에서 진행되었지만 2학년때부터는 좁은 학교에서 자리를 잡고 했다는 것. 그리고 소풍때처럼 부모님들께서 준비해주신 맛있는 음식을 하루종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운동하고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관계로 반 전체가 참가했던 종목 이외에는 직접적인 참여 기회도 적었고. 특히나 반대항 종목별 시합이 있을 경우에는 각 반별로 펼쳐지는 응원전도 대단했다.
2학년때는 역시 축제와 마찬가지로 이곳 저곳 다니면서 여러가지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아! 각 반별로 통일성을 위해 반T를 제작하여 입기도 했는데 손 선생님과 불꽃남자라는 반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회색바탕에 검은 용 무늬가 들어가있는 쫄티를 입었었다. 그래서 조금은 주목받기도 했었지만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을 찍어야 했던 두희와 나로서는 조금 쪽팔리기도 +_+ 평상시 일과 내내 실내에서 생활하는 일이 많았던 우리로서는 하루 종일 바깥에 있으면 얼굴이 금새 까맣게 그을리기도 했지만. 아! 3학년 때는 갑작스레 비가 와서 진성고 역사상 처음으로 이틀에 걸쳐 체육대회를 진행하기도 했었다. ^ ^ 아무튼 축제와 마찬가지로 하루종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놀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의의 아니겠는가! ^__^

8. 잔류 / 조기귀교

잔류는 남여 각 2주에 한번씩 학교에 남아있는 것, 조기귀교는 본래 월요일 아침 귀교이지만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것. 공부안했던 티가 팍팍 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3년동안 잔류나 조귀기교를 해본적이 없다. 월요일부터 주말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패닉상태인데, 그나마 주어진 하루 반의 귀향(?)을 마다하기에는 너무 힘든 생활이었다고나 할까. ㅋ 원래 학교에서는 빨래를 거의 안하고 일주일치 갈아입을 교복, 체육복과 속옷을 챙겨가기 때문에 주말에는 집에 가야할 이유도 있었고. (요즘은 트랜드?가 되었는지 멀리서 오는 후배님들이 많아서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다들 여행용 트렁크를 가지고 다니는듯. 우리때는 그냥 조금 큰 가방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번쯤 해봤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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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나 조기귀교시 주었다던 식권
그나마 친구에게 받아두었던 것임
(수능 바로 전달이잖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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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학생증

학교를 간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후배님들이 올려놓은 사진들을 보면 책상, 사물함, 티비부터 기숙사까지 정말 이것 저것 안바뀐 것이 없어보이는데 (물론 하하가 그렇게 외치는 '스파르타!'는 하나도 안변했더군) 변한것중 하나가 학생증인듯 하다. 언뜻 보니 요즘은 플라스틱 카드로 바뀐 것 같은데 혹시 칩같은 것도 들어있나? 대학들이야 다들 그렇게 하지만 암튼. 우리때는 당연히(?) 수제 학생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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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학년때의 학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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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것이 1학년때의 학생증, 오른쪽 것이 2학년 말에 바뀌었던 학생증이다. 그나마 2학년때는 작게나마 도서실이 생겨서 학생증을 코팅하고 뒤에 바코드 스티커를 붙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기본적으로는 종이 학생증에 하나하나 직접 글씨를 쓰는 형태였다. 우리반 것은 김군이 무료봉사를 했었던. -_- 수제 학생증의 묘미는 아무래도 '위조'에 있지 않나 싶은데 (ㅋ) 고2때 나왔던 영화를 보기 위해 학생증 한장을 슬쩍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입구에 따로 검사하는 분이 계셨었는데, 무지 긴장했었지만 의외로 쉽게 들여보내주시던. ㅎㅎ 사진은 둘 다 공개할 수가 없음.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참 아스트랄한 사진임)

PS
그다지 재미있다거나 생동감있는 표현은 아니군. 거의 다 '-했다' '-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식이니까..

그래두 뭐 잊지 않으려는 목적이 가장 크니 어쩔 수 없다. 기억나는 것도 한계가 있고.
군 입대를 7일 남겨둔 지금,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도. +_+ 핑계가 너무 많나? ^__^


진성고등학교 시리즈는 총 20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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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
Prologue
아침편  :  첫번째  두번째
주간일과  :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야간일과  :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단편의 기억들  :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특별편  :  교복  진성7무  교지편집부  패러디  졸업생의 눈으로
끝 : Ending Cr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