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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고등학교 : 단편의 기억들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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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고등학교 : 단편의 기억들 [1]

생각의탄생 2008. 3. 15. 16:23
1. 생일

진성고에서 맞는 생일이 어느때보다 특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반 친구들 모두의 축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참석하는 생일 파티는 물론이고 생일빵마저도 모두에게 당하는 진성고에서의 세번의 생일. 3년간의 생일 모두가 어떠했는지 생생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확실한건, 행복했다는거다. ^-^ 대부분의 생일 파티는 야간 자율학습 2교시가 끝난 간식시간 식당에서 이루어진다. 평소 몰아주기 가위바위보를 하고 당첨되었을 때는 그렇게나 아까웠건만, 일년에 단 한번뿐인 생일만큼은 부담없이 쏜다. 20분 뿐인 시간과 북적거리는 아이들 때문에 비교적 한산한 저녁시간 미리 사두었던 과자며 아이스크림, 음료수 보따리를 들고 사람이 별로 없는 식당 저 끝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아이들이 하나 둘 몰려오기 시작한다. 물론 칠판에 미리 광고해둔 덕분 ^ ^v
 
근사한 조명 아래 초코파이에 초를 꽂고 '호오~(촛불 끄기)' '(친구 일동) 축하해! 짝짝짝~!'
 
하는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지만 확실한건 생일 축하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생일빵을 당했다는 것이다. 노래는 부르는 듯 안부르는 듯 점점 탬포가 빨라지더니 나를 식당 벽 한쪽 구석에 몰아놓고서는. 으흐흑 -_- 인정 사정 없는놈들 같으니~! 그래도 일년 중에 맞아도 행복한 날이 생일밖에 더 있으랴! 아! 오해는 마라! 맞으면 행복해지는 이상한 놈은 아니다. 이렇게 생일빵이 끝나고 나면 몸은 이곳저곳 쑤시고  체육복 여기저기 부어댄 음료수로 축축하고 찝찝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과자를 집어먹으면서 축하한다는 친구들의 말 한마디가 어찌나 고맙던지 ㅎㅎ
 
그렇게 간식시간의 축하가 끝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종료되는건 아니다. 진짜 생일빵은 야자 4교시가 끝나고 돌아온 기숙사에서 시작된다. 진성고의 또다른 전통 아닌 전통인가? +_+;; 심지어는 교칙 준수를 생명으로 여기는 야담들마저도 생일빵 행사는 봐주거나 직접 참여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세줄로 놓여진 이층침대 사이 두개의 통로가 있다. 한 곳으로 뛰어가서 반환점을 돌아 반대편으로 나와야 하는데 각자 자신의 배게를 들고 단단히 벼르고 있으니 그게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짜식들- 뭔가 대충 하는법이 없다. 진짜 아프다. 가끔 원한이 있는 경우 다른 친구를 사주해 길을 가로막게 한 후 침대로 강제연행해 무차별 사랑의 구타를 가하는 경우도 있다. 아주 다행히 그런 기억은 없고 ^ ^
 
졸업하고 나니 가까운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같은반이었던 친구들 얼굴보기가 힘들다. 친한 친구들과의 조촐한 생일 파티를 하곤 했지만 모두가 함께 했던 그 때를 떠올리면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든다. 몸이 근질근질한가? 생일빵이 그립다. (나 그런놈..아니야- 아니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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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런 분위기로 생각하면 낭패!
(2학년 말. 한창 비디오 보며 놀고 있던 어느날
학교 홍보 팜플렛 사진촬영! 졸지에 생일된 갬생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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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이어리

2학년 5월쯤부터 다이어리란걸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뭔가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위해 만든것이었데 날이 갈수록 점점 꾸미는데 치중하게 되었다. 사실 그런 것에 아주 취미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_-;나름대로 좋은 점은 있다. 매일 중요한 사항들을 날짜별로 적거나 대강의 일과를 정리하기도 하고 간단히 일기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다이어리는 일과 관련 속지를 제외하고서도 비정상적인 팽창을 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당연한 이유가 있다. 우정 과시, 홍보, 자기만족, 속 떠보기 등의 목적으로 반 친구들에게 속지 한장씩을 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채워! 앞뒤로 (-_-)' 반 강압적인 부탁아닌 부탁이다.
 
그냥 재미의 의미도 있고 흐뭇하기도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친구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지금 말로는 하기 힘든 이야기를 문자로 주고 받듯이 그 때는 속지를 주고받는 것도 가끔은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금, 친구들에게 속지를 받은지 몇년이 흘렀고 잊어버린 기억도 많다. 하지만 다시 다이어리를 꺼내 펼쳐보면, 새록새록 다시 생각나는 일들이 많다. 각자의 이성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그것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나 서로에 대한 격려도 있고, 서로 놀려대던 일들로 장난섞인 이야기도 있고.
 
뒷면에는 항상 자신의 프로필을 적어주곤 했다. 이름이 어쩌니, 생년월일에 B.P 번호에 뭐에 이미 다 알고 있을 법한 참 식상할 수도 있는 내용들. 그래도 지금 펼쳐보면 그 친구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몇달 전에 은식군이 고2, 고3때 내가 써준 다이어리 속지를 찍어서 보내준 적이 있다. 너무 생생하다. 그 속지를 써 줄 때의 기억, 그 상황. 그리고 7년이란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벌써? 윽 -_- 수능이 끝나고 기숙사를 벗어나기만 기다리고 있을 즈음. 두희군에게 받은 속지에는 이렇게 씌여있다.
 
'우리가 입학한지,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난지 엇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라니. 세월무상이다..'
그리고. 세월 무상을 느낀지 또 다시 6년여가 흘렀다. 휴우- +_+

다이어리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느 이름 모를 책에 끼워둔 낙엽같은 것. 세월이 지나고 우리의 모습과 같이 모양은 변해있지만 오랜만에 꺼내어본 책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발견한 기쁨처럼, 새로운 기억을 찾을 수 있어 행복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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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식군과 종민군이 보내준 사진.
내가 친구들에게 써준건데. ^-^
다들 안버리고 가지고 있구나!
나중에 나 유명해지면 옥션에 올리려는거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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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소

이 역시 모든 학생들은 알고 있다. 진성고등학교는 무엇보다도 청결을 제 1과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특히나 환경미화 담당이었던 이용수 체육선생님이 계시던 우리 때는 정말 대단했다. 1학년 때. 이 학교가 깨끗한 환경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청소에 대한 강조를 얼마나 침이 마르도록 하는지 점점 익숙해져 가는 시기이다. 각 반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교실은 물론이오 담당하는 특별 구역이 따로 있다. 화장실, 계단, 분리수거, 복도 그리고 각 특별실 등. 특히 각 담담구역에 대한 청결 유지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조금도 게을리할 수 없는게, 청소 확인은 주번 모임이 있기 훨씬 전. 그러니까 앞서 말한 아침 자습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 새벽부터 나와서 제대로 청소를 하는지 살펴보고는 상태 불량 구역의 담당반을 불러 혼내니 우리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새벽부터 담당구역 청소를 하고, 또 일주일 내내 긴장해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

특히나 싫었던 것은 분리수거였다. 나부터도 그렇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분리수거를 잘 하지 않는다. 그냥 왔다 갔다 하면서 휙- 던지면 그만. 아무래도 쓰레기인데. 매일 아침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는 것. 다른 것보다도 쓰레기를 손으로 분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토요일날 가장 늦게 귀가한다는 것이 정말 싫었다. -_- 아무튼 주번이든, 청소 담당이든간에 환경미화에 대한 학교의 관심은 도가 지나쳐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으니 대충 짐작은 하리라 믿는다. 아마 쉬는 시간마다 가장 많이 방송을 탔던 목소리도 이용수 선생님 목소리가 아닐까? 방송 내용도
매우 간단하다.
 
 '2학년 1반 복도, 1학녀 5반 중앙현관 담당. 1분내로 교무실 앞으로 집합.' 
 
마치 복권 당첨번호를 하나 하나 들으며 맞춰가는 것 처럼, 호명되는 반에 우리반이 들어가지 않기를 그때는 그렇게나 바랬다. 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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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주번 명찰. 기억에는 매일 아침 주번 집합도 있었던 것 같고.
나중에 졸업하고나서 책을 보니 끼워져 있더라. 오해는 말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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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모의고사 후 영화보기

TV프로그램은 자주 못봤어도 영화는 자주 봤다. 매번 모의고사를 보던날이면 위로의 의미로 그날 저녁3, 4교시는 비디오 한편을 상영해주었기 때문이다. 보통 3주-한달에 한번 꼴로 시험을 치루었으니 시험이 지겨웠던 만큼 그날 저녁은 더욱 즐거웠다. 커다란 스크린은 아니었지만 두개의 텔레비전을 통해 아이들 모두가 같이 영화를 보는 재미는 특별하다. 앞서 언급했었지만 재미있는 것은 많은사람이 같이 볼수록 더 재미있는 거라고~ 실제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라치면 누군가 엉뚱한 상상이나 어이없는 이야기를 해서 반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는 경우가 많다.
 
3교시 간식시간이 끝날 무렵이 되면 각반으로 돌아가라는 방송이 나온다. 그 후 인원점검이 끝나고 영화가 시작되면 불을 끈다. 책상이 티비 앞쪽에 있는 첫번째 두번째쯤에 앉은 친구들은 의자를 들고 뒤로 와서 여기저기 끼어본다. 서로 기대거나 눕기도 하고 맨 뒤에 사물함에 일자로 누워보기도 한다.(사실 좀 멀어서 그렇지 이게 제일 상석이다.) 3학년때 는 책상이 넓어서 참 좋았다.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채로 발을 책상위에 올리고 보면 참 편했는데. 영화가 재미없으면 그냥 자거나 맨 뒤에서 따로 이야기를 하면서 놀거나 했다.
 
공부를 하기 위해 특별실에 가거나 피곤함에 그냥 잠을 청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교지 편집부였던 나는 가끔 영화를 보지 않고 모이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영화는 너무 재미있게 봤다. 3학년 수능이 끝나고 나서는 매일 한편씩 봤었는데 그때는 영화가 지겨워서 물릴 정도였다. 하긴, 그때는 온갖 이상한 영화를 빌려왔으니 그럴 수 밖에. 그럴 때는 암묵적인 동의하에 티비를 봤다. 랭크특급. ㅋ 아무튼 시험이 끝난후의 영화 감상은 진성의 비공식 행사였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는 정말 기대되는 3, 4교시기도 했고. 역시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 봐야 재미있다. ^ ^

참! 기억에 남는 영화가 하나 있다. 모의고사 후에 본 것은 아니고 박한철 선생님 사회 특강시간에 감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러브래터를 보고 너무나 감동받았던 것도 기억나고, 토토로나 반딧불의 묘를 보고 처음 본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 놀라워했던 기억도 있다. 그나저나 박한철 선생님은 지금쯤 어디에 계실런지. 1학년 때 우리반 부담임선생님, 2학기때는 3반의 담임선생님이셨다가 다른 학교로 가셨었음. 말썽피우는 우리들 때문에 약간의 성질을 보여주시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들에게는 열린 교육에 대한 희망으로 보였다. 우리들이 졸업하고 나중에 성공해서 진성고를 사면 선생님 교장시켜드린다고 했었는데 ^ ^ 1학년 때, 주병진쇼였던가? 아무튼 모 프로그램의 시민발언대에서 정치인들을 향해 일침을 가하셨던 것도 생각난다. 멘트도 기억나는걸~ '당신들말이야~ 내가 사회선생님인데.애들한테 할 말이 없어 할 말이!' 언제가셨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2학년 끝날때 쯤 가셨구나. 2학년 봄쯤에 CA전일제 하던날 결혼식에도 갔었고 겨울 특강시간에는 처음으로선생님을 따라 국회에도 가봤었는데. 갑자기 박한철 선생님이 보고싶네~ ^-^
 
PS
사진들은 친구들(종민군과 은식군)의 협찬(!)으로 업뎃!


진성고등학교 시리즈는 총 20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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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
Prologue
아침편  :  첫번째  두번째
주간일과  :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야간일과  :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단편의 기억들  :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특별편  :  교복  진성7무  교지편집부  패러디  졸업생의 눈으로
끝 : Ending Cr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