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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고등학교 : 야간일과 [3]

생각의탄생 2008. 3. 15. 16:06
3. 기숙사로 돌아와서..

아무튼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산책도 하고, 생교도 받고 (-_-), 서로 깨워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야자 4교시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오늘은 그냥 피곤해서 연장 없이 기숙사로 곧장 간다. 기숙사로 향하는 아이들 절반이 너무 졸은 나머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 어떻게 기숙사로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저런게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아왔던 동물의 귀소본능인가 싶기도 하다. 11시 40분경에 종이 치고 50분이 되면 점호를 실시한다. 각자 자기 침대 위에서 앉은채로 번호를 하는데 가끔은 정신 못차리고 자기 번호가 돌아 와도 잡담하다가 못해서 끊기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 ^

'성실! 2002년 몇월 몇일 3학년 4반, 9반 취침점호 인원보고. 총원 56명 사고 무. 현재인원 45. 연장 11
번호! 하나~ 둘~ 이상 3학년 4,9반 취침점호 준비 끝! 성실!'

뭐 군대하고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대강 야담선생님의 훈계가 끝나고 불을 끈다. 역시 화장실 이외에는 이동 불가능이다. 피곤하면 그냥 자기도 하지만 옆에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하기도 한다. 좌 갬생 우 배추를 거느린 나는 남부러울 것 없이.. 그냥 잔다. 지금껏 진성고에서 이야기하다 밤을 샌 적은 거의 없다. 주로 1학년때 옆에 있던 J군과 이야기를 하거나 가끔 이 침대 저 침대 다니며 이야기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렇다고 해도 고작 30분이나 한시간이다. 절대적으로 잠은 자야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아니, 지론이라기보다는 몸이 그렇게 시킨다. 이야기를 하다가도 분명 먼저 잠드는 것은 나다. -_-
 
몇몇 아이들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거의 3년 내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올빼미 체질들. 아주 가끔 새벽에 깨어있으면 항상 잠 못드는 아이들은 따로 있다. 그렇다. 잠을 잘 잔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거다. 3학년때도 항상 그냥 잤다. 옆에 갬생이 건너와서 배추랑 놀다 자곤 했지만 옆에서 조금이라도 떠드는게 잠에 방해가 됬다면 벌써부터 잠못자고 괴로워했을꺼다. 심지어는 아래침대에서 침대를 흔들어대도 편하게 잤던 나다. 참 미안한 것은 각 학년이 끝나고 마지막날 밤을 기념한다며 먹을 것들을 푸짐하게 사놓고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결국 모두 잠들게 되는데 가장 먼저 잠드는 사람은 항상 나라는 것이다. 잠도 전염성이 있나? 다음날 일어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얼마 못가 잠들었다고 한다. 얘들아! 미안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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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교사동 바로 옆에 있는 생활관 (기숙사) 전경.
보통 기숙사 학교라 하면 3-4인실에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된 꿈의(?) 장소를 생각하는데.
순수하게 잠만 자는 곳이다! 온리 슬리핑! 유노우?
보시다시피 졸업 후에는 5층에 새로운 시설을 올렸고,
지하 2층에는 강당이 새로 생겼다. 그거. 우리 돈이다! -_-
 
[사진출처 : 역시 까먹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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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 넘어오지 않으면 한시나 두시까지 연장야자를 한다. 1,2학년때는 거의 대부분 기숙사로 넘어가서 잠을 청하지만 지금은 3학년이라고 참 많은 아이들이 남아있다. 공부도 하고, 사람이 많이 없으면 잡담도 하고. 원래는 학교 전체에, 그리고 특히 교사동에는 음식물 반입 금지지만 제대로 지켜지지는 않는다. 선도부나 야담들이 지키고 서 있긴 하지만 몸 구석구석에 숨길곳은 많기때문! 연장때면 짱박아놓은 과자며 음료수를 몰래 꺼내 먹기도 하고 아예 식사시간에 퍼온 밥을 먹기도 한다. 나도 가끔 먹곤 했지만.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저녁시간에 밥을 퍼오고 고추장이나 김치 혹은 외출나갔다 온 아이들이 사온 참치 한캔이라도 있으면 정말 대박이다. 집에서 그렇게 먹으라고 해도 안먹지만 학교에서는 모든 것이 왜이렇게 맛있는지 ^ ^ 물론 숟가락은 식당에서 슬쩍 한 것들이다.
 
연장 시간에는 이렇게 허기를 채우기도 하고 쉬는 시간이면 접어놓은 우유곽으로 축구도 하고, 야담 몰래 금단의 문을 통해 사랑(?)을 속삭이는 아이들도 심심찮게 볼 수도 있고. 가끔은 새벽에 하는 국가대표 축구 생중계를 보기 위해 남아있는 경우도 있는데 야담몰래 보려면 참 골치아프다. 좋은 선생님들은 그냥 넘어가주기도 하더만. 윽-
 
나도 가끔 연장을 하는데 3반에 가보면 우리의 J군은 항상 연장매니아다. 기숙사에서 매일 늦게서야 잠을 이루는 아이들처럼 올빼미 체질은 어쩔 수 없나보다. 엇그제도 남아서 연장을 하는데 역시나 J군은 남아 있었다. 그렇게 한시 두시에 자니까 매일 아침 1,2교시때 가보면 엎드려있지.
 
연장하고 기숙사로 돌아가면서 자고있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경우도 많이 있다. 나같이 침대가 흔들리건 떠들건 잘 자는 아이들도 있는 반면에 정말 민감한 친구들도 많기 때문이다. +_+ 쉽게 잠이 오지 않을 때 소곤소곤 바람소리로 옆 친구와 이야기하다 자기도 하지만 '야~ 잠좀자자~' 하는 소리를 들으면 참 미안해진다.

어쨌든 오늘 하루도 끝이 났다. 내일도 별반 다를바 없을 것 같은, 거의 확실한 일과 -_- 매주 들어오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 가끔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다가 시간표를 보고 알 정도로 시간에 대해 무감각해 지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 맞닥뜨린 오늘 하루는 그렇게나 길게 느껴지지만 말이다.
 
불 꺼진 기숙사 침대에서 스르르 잠이들며 생각한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도 설명하자면 이렇게나 길고 특별한 사건들이 많이 있는데, 시간이 지난 후에 지금의 하루를 떠올려 보면 과연 오늘의 일상, 오늘의 기분은 어떠한 형태로 내 기억속에 남아있을까? 혹여나 다 잊어버리고 기억조차 하지 못하면 어쩌지? 짧은 인생이지만 살아오면서 기억속에 남아 추억하는 것은 참 아름다운데. 향기조차 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기도한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게 남아있기를. 떠올리면 웃음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기억하면 추억으로 돌아와
언제나 내 인생의 한 부분에서 향기롭게 남아있기를. 왜냐하면, 그만큼이나 지금은 소중한 순간이니까.'


막 잠들려고 하는데 배추의 발 한짝이 내 몸을 엄습한다. 무겁다. -_- 아래에서는 그것보다 더 무섭게 코를 골아댄다. 하지만 하루이틀 겪어보나? ^ ^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 모두 Good nigh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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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리얼한 기숙사 내부. 보통 저정도는 아니라고 보면 된다. -_-
너무 지저분하면 야담에게 한 소리 듣기 때문에. ㅋ
 
내게 기숙사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살았어? 아니, 그런 곳이 있기나 한거야?'
 
그땐 정말이지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맘 뿐이었던 곳인데.
지금 왜이렇게 그리운걸까?
 
3년을 같은 방에서,저렇게 가까이에서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이
10년도 넘는 진한 우정으로 남았다는 행복함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단 하루라도 좋으니 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땐. 정말 꼬박 밤을 새워 친구들과 추억을 되새겨보리라.
 
[사진출처 : 역시 모름. 죄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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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고등학교 시리즈는 총 20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로가기]
시작 : Prologue
아침편  :  첫번째  두번째
주간일과  :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야간일과  :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단편의 기억들  :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특별편  :  교복  진성7무  교지편집부  패러디  졸업생의 눈으로
끝 : Ending Credit